나를 보는 나무

 이른 아침 , 새 소리에 바람도 미소를 짓네

숲 속에는 하루를 준비 하는 벌레도 꽃들도 나무도 

모두가 스스로 몸을 움직여 땅에게 먼저 인사를 하네

나도 맨발로 땅을 감싸며 조용히 인사를 하였네

큰 벌이 눈 앞에서 윙윙거리며 춤을 추듯 날고

방금 마주친 수국은 복숭아 처럼 예쁘고

떨어진 나뭇잎 들은 그 누군가의 아픔을 공손히 껴안고 

천천히 기도하며 땅 속으로 스며들어가네

아 ! 아름다워 

변해가는 모든 것 들이

아픔과 고통 슬픔과 절망

이 것들 또한 아름다워

왜냐면 

아직 저 한 그루의 나무가 있잖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세상은 아름답고

그것만으로도 아직은 모든 것을 견딜 수 있어

나를 보는 나무가 저기 서 있어

나무를 보는 내가 이곳에 서 있어

아주 딱 좋은 거리를 두고 서로 바라보고 있어


바람

 나는 바람이 좋아

보이지도 않고 만질수도 없는  

투명한 그 바람이 나는 좋아

나의 여윈 구멍 뚫린 마음 속에

잠시 머물다 저 먼 곳으로 작별인사도 없이 

사라져가는 

그 차가운 ,

그러나 심장을 살아 움직이게 흔드는 

언제나 그모습의 바람이 나는 좋아

열여덟 살이었던가!

죽은 자들이 잠든 검은 언덕 위에서

흐느끼고 있을때,

어느 한 바람이 내 곁에 머물며 

눈물에 얼룩진 내 흰 상복 저고리 옷고름을

따스하게 매만지며 한동안 조용히 있었지

분명 바람인데 불고 사라지는 바람이 아니었어

나는 바람이 좋아 

보고싶은 얼굴과 잊혀지지 않는 그리운 냄새

잊고싶은 얼굴과 이제는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먼 지난 시절의 허망함 그 모든 것들이 바람 속에서

태어나 죽어가지

나는 오늘 다시 태어났고

나는 지금 다시 시작하고

이 한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있어

보이지 않지만 살아 숨쉬며 

내 어깨를 감싸는 이 밤의 어느 한 바람

바람은 내게 살아가라고 이렇게 불어오나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