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목소리로

 정복 하려 하지 말아요

짓밟고 무너뜨리려고도

하지 말아요

서로의 보이지 않는 마음을

너무 보려고도 하지 말고

서로의 약한 곳에 채찍질 해가며

누가 더 강하게 오래 버티는지

어리석은 싸움놀이는 이제 그만해요

산과 절과 교회와 사원들에게

아픔 또한 주지 마세요

자신의 목숨을 나라에 걸지도 말고

자신과 그 무엇 때문이더라도

자폭 행위도 하지 말아 주세요

모든것은 하나 이지요

그 하나를 대신해줄것은

그 하나밖에 다른 아무것도

없답니다

내 것이 아니면 갖으려고 하지

말아 주세요

그러나 주고싶다면 얼마든지 주세요

그것이 사람과 동물과 자연을 위한

일이라면 더욱 좋겠지요

어렵겠지만 

이성을 잃은 비판과 

존중을 저버린 풍자도 하지 말아요

그래서 세상이 좋아졌나요

옛날 보다 지금이 더 행복해졌나요

대화 보다 중요한 그래도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 남아있는 순수한 한가닥의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세요

우리는 정말 알고 있을거에요

우리의 영웅이 세상의 다른이에게는 

원수 일수도있고

세상의 어느 독재자가 그들만에게는

영웅 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옳건 나쁘건간에

우리는 그 무엇도 정복 해서는 안돼요

이기적인 기도가 사라지지 않는 한

세상은 여전히 분쟁을 하며

세상은 서서히 깊게 병들어 가겠죠

하루에 한번이라도 좋으니 

신앙인이 아니더라도

그 누군가를 위해

나 자신을 위해 우리 기도해요

순수한 목소리로







한가지 부탁 드려요

 내 작고 얇은 이불 안으로

그대 들어 오세요

사랑 따위는 생각지 말고

우리 잠시 서로의 얼어져가는

마음을 녹여봐요

허기진 마른 바람이 

가끔 창문을 흔들고

철지난 색 바랜 옷들이

구부러진 옷걸이에 걸려

지나간 시절의 꿈을 꾸고 있네요

내가 지금가진건 

아무것도 없답니다

제자리에 있어야할 모든 것들이

그대로인데 왜 나는 마음이 가난하고

왜 이리도 추운 걸까요

그대는 항상 나무 침대에 누워

오리털 이불을 휘감고 

음악을 들으며 때로는

많은 사람들과 자신의 앞날에 대하여

자신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요

나는 

그래요

이제는 그런건 아무래도 좋아요

당신의 인생 이니까

그런데 

나는 지금 너무나 추워요

내 어깨를 쓰다듬어 달라는

그런 요구는 말도 안되지요

당신과 함께 서로의 삶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자는 것은 더 더욱

말도 안되지요

당신에 대한 나의 신뢰가

그 어느 여름날 태양 속으로

사라졌을때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하지만 견딜 수 있었어요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정말 맞네요 

한가지 당신께 부탁이 있어요

무심코 내 이불을 밟고 지나치기전에

한번쯤은 바라봐 주세요

추위에 지쳐있는 당신의

아내의 모습을 






비 내리는 어느 아침에

 비가 내리는 흐린 아침

우산도없이 길을 걸었어

배고픈 아침 이었지

어머니의 된장국이 떠오르는 아침 이었어

우산을 받쳐 들고 모두들 

어디로 사라져 가는 걸까

사람이나 짐승이나 비에 젖어 축 늘어진

몸뚱이는 가느다란 실 처럼 금방이라도

저 빗줄기에 끊어질 것만 같아

부산의 어느 산 동네에서

바라보던 저녁 노을빛 잠긴 바다가 보고싶어

원주역이 강 건너 보이던 흙길 둑방위에서

다시 한번 아버지의 손을 잡아보고 싶어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비가 내리면 

만성 편두통과 향수병에 시달리지

그래도 웃어야지

기계인간들 처럼 모두가 우산과 함께 

바쁜 모습으로 사라져가고 있는데

나는 지금 정신이 나간 여자처럼 홀로

빗속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고있네

비 처럼 많이 울어봤으니 

이제 부터는 많이 웃어봐

비 개인 후의 밝은 무지개 처럼말이야

정신이 나간 여자 처럼 웃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것 같아

그런데

지금 나는 너무나 배가 고파

웃기가 힘들 정도로 말이야

비 냄새가 흠뻑 스며든

 토요히라 강물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젖은 풀잎도 살짝 쓰다듬어 보고

나는 집으로 향했어

돌아갈 집이 있다는게

오늘따라 유난히 기쁘고 

행복하다고 느꼈지

아 오랜만에 된장국 이라도 끓여볼까


 



나는 싫어요(1)

 나는 싫어요

당신의 그 흐린 눈동자가…

초점없이 거칠게 다가오며

내 허벅지를 응시하는 그 눈빛이…

나는 싫어요

당신의 그 큰 손이…

지폐 뭉치를 보여주며

금방이라도 내 가슴을

움켜잡을듯한

그 검은 손이…

나는 싫어요

거짓의 연기 대사를 

외워야 하는 이 밤이

이 공간 이 상황을 

겪어야 하는 매일 밤이

나는 싫어요

나를 감시하고 통제 하려는 그 여자들이

그 여자들 또한

과거에는"나는 싫어요"라고

외쳤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외치지는 않았어요

당당하게

모든 것을 걷어차내고

싫어요 에서

도망을 쳤지요

나는 정말 좋았어요

나를 받아준 삼류 음악가의 노랫소리가 

나를 위해 들려주는 기타소리가

나는 정말 좋았지요

작은 짐 트럭 뒤에 몸을 숨기고

그와 함께 달리던 어느 봄날의 오후

아마 밖에는 벚꽃이 눈 처럼 

내리고 있었을거예요

나는 싫어요 라는

두려움과 공포속에서도

나를 지켜준 그 한마디

그 한마디는 

죽을 각오를 한 미친듯한

진정한 용기있는 말 이었지요

작은 짐 트럭 뒷문 열쇠를 푸는소리

눈이 부시는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

흩날리는 벚꽃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낡은 붉은 벽돌집 앞

나는 그 집으로 들어가기전에

트럭 운전사 노 부부에게 

인사를 하고 잠시 포옹을 했지요

그 가슴의 따스함을 그대로 간직 한채

나와 그는 벽돌집 안으로 들어갔답니다












그 남자 그 여자 (2)

 색동 꽃고무신 보다 어여쁜

보랏빛 벨벳 하이힐

색동 저고리 보다 화사한

연분홍 투피스

그 여자는 거울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

고향을 떠나올때 어쩌면 

지금의 이 모습을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런 모습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유월의 어느 밤

꾸겨진 작은 종이에 적힌 글씨

"잘 부탁합니다 저는 옥순이 입니다"

어둡고 외로운 가시덤불 긴 산길

엄마 찾아 헤매는 어린송아지 처럼 

그 여자의 눈망울이 점점 젖어 간다


목요일 

여덟시

그 남자가 곧 문을 열고 들어올 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에 건네준 쥐덫

그 여자의 흰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 여자는 지금부터 무엇을 하려는 것 일까




그 남자 그 여자 (1)

 도대체 성한 치아가 

하나도 없어 보였다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되는 낯선 언어

그 남자의 온몸은 

담배연기에 젖어있었고

유독 새끼손가락손톱에

깊숙이 파묻힌 검은 때와

그 손가락에 끼인 

누런 금반지의 반짝임이

이제껏 느껴본적이없는 

야릇한 비현실적 느낌마저 들게했다

그 회색빛 공간 속에 찌든

시간은 마치 고장 난 시계처럼 

정지 되었다

아,이것은 꿈이야 

감기에 걸려 꾸는 악몽이야

그 남자는 매주 목요일 저녁 여덟시에

그 여자가 있는 술집에 고개를 숙인채

쥐구멍에 숨어들어가는 모습으로

어깨를 움추린 채 들어왔다

그 남자를 다른 여자들은 

모두 알고있었지만

그 여자는 그 남자를 모른다

그 남자뿐만 아니라 그외 어떤 남자도

그 여자는 모르고 있었다

접시를 닦으며

젖은 행주를 쥐어 짜며 

옛 시절을 열심히 떠올려가며

누군가의 인기척에 도망치는 

바퀴벌레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 여자는 기도했다

검고 붉게 흔들리는

저 음울한 조명 속으로

자신의 존재가 사라져가지않기를



사라져가네

외투 주머니 속에 무엇이 들어 있었지?

돌멩이 두개 들어 있었을거야

한개 들어있으면 

외로울것같아 

두개 집어 넣었지

그런데,

그 돌멩이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제일 맘에 드는 모자 속에

꼭 꼭 감춰둔 것이 있었지

잊으면 안되는 집 주소와

잊으면 찾을수없는 얼굴을

간직하고 있었지

그런데,

그 모자를 잃어버렸어

어떤날은

몇개인지 모르는 

나의 마음이 궁금해서

살짝 당신에게 물어보았지

당신은 정성스럽게 

기타에 묻은 먼지를 닦으며

내게 말했어

몇개인지 알고 싶으면 

그 마음들을 다 시로 써보라고 말이야

좋은 생각이라고 

나 역시 생각했어

그런데 그때는 당신의 그 조언 보다

지친 내 마음을 잠시나마 

보아 주기를 원했어

그 후로 나는 많은 시를 썼어

물론 당신은 읽지않는…

그리고 우리는 함께 있으면 있을수록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이 점점 사라졌지

내가 소중히 간직 했던 것들이

시간과 나이와 함께 또한

서서히 사라져 갔지

그런데 때로는 행복하기도해

뭔가 가벼워진듯해

뭔가 자유롭기도하고…

두껍고 무거운 사전책장을 뒤척이며

어려운 글을 쓰고 

사전이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애매한 문장들 속에서 

해방된 그런 느낌이야

그런데 사라진다고 해서

반드시 잊혀지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아











누가 나를 보고싶어 할까요

 예순이 넘은 오빠와 언니는

저를 보고 싶어 하지요

돌아가신 부모님도 저를

보고싶어할거예요

그리고

오래전 내 곁을 떠난 두 마리의

천사 고양이들도 어쩌면 저를

보고 싶어할지도 몰라요

그외 그 누가 

저를 보고 싶어 할까요

용문사 뒷산에서 밤을 주워

작은 내 두손에 담아주었던 

그 스님은 저를 기억 하고 있을까요

전학 갈때 

비 내리는 운동장 한 가운데에 서서

먼 유리창 넘어로 찾던 그 얼굴

그 얼굴의 친구는 저를

기억하고 있을까요

모르겠어요

저는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데

모르겠어요

왜 만날 수가 없는지

누가 저를 보고 싶어 할까요

누가 저를 기억 하고 있을까요

홀로 떠나 보면 알지요

정말 보고 싶은 

잊지 못할 그 누군가가 있다는 

외로운 행복을

헤어져 보면 알지요

나의 무지와 잘못을

오늘도 흰 눈이 내립니다

이 모든 생각들이

흰 눈에 덮혀 잊혀질까 조금은

슬퍼지는 하루 입니다



영등포역

 열차시간표가 젖어보였어

어디론가 가야 하는데

이곳에서 되도록 빨리 떠나야 하는데

갈 곳이 없네 

백원짜리 동전을 주머니에서 꺼내

고향친구에게 시외전화를 걸었지

왜 그때 갑자기 그 친구 생각이 났을까

친구는 몇년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지

친구의 부모님을 통해 알게되었어

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금방 알수있는 친구의 목소리

주화기를 두 손으로 꼭 움켜잡고

나는 울고있었어

친구는 옥미!너 옥미 맞지?!

친구 역시 금방 나를 알아보았지

그렇게 나는 

떠나온 고향을 

두번 다시 가보고 싶지않은 고향에

친구를 만나러 돌아가게 되었지

그리고

그뒤 내 인생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새로운 길로 접어 들었어

희망의 길 행복의 길이었을까?

그때는 

우리나라를 떠나는 것이

행복했어

그래 정말 행복했어










날개

깊은  산속의

무거운 침묵은 안개를 끌어안고

파아란 작은 호수는 하늘을 담아안고

한마리 흰새는 빈 몸으로

눈물을 감싸안은채

작은 목소리로 울고있다

삼백살 은행나무 할아버지 활짝펼쳐진

부채같은 고운 잎새 건네주지만

새는 울고만 있다

나무와꽃 나비와노루 풀벌레와바람

모두가 곁에 있는데

모두가 함께 있는데

새는 여전히 울고만 있다

당신은 들리나요⁈

당신을 부르고 있는 

간절한 새의목소리가

깊은 산속의

한마리 새

모두가 곁에 있는데

모두가 지켜주고 있는데

울기만 하네요

당신이 앗아가버린

그 흰 날개 이제 그만

새에게 돌려주세요

자유롭게 모두를 끌어안고

자유롭게 산과 호수를 날을수있도록

그 날개를 돌려주세요

그 날개는 

당신의 날개가 아니랍니다





태장동

 앞집 아주머니가 새벽에 도망을 갔다

뒷집 아저씨는 무당이 되어 이상한 모습으로 

산에서 내려왔다

우리집은 간 밤에 불이나 엄마는 울었다

나는 내일 학교에 가지않아도되 왠지 조금은

기뻤다

앞집 아저씨가 리어카를 끌다가 다리를 다쳤다

뒷집 아주머니는 새 남자랑 춘천으로 떠났다

우리집은 앞집의 옆집으로 이사를했다

왠지 나는 슬펐다

이 동네가…

이동네를 떠나지 못하는 현실이…

사람들이…

서울에서 때밀이를 하던 앞집 아주머니가 

예쁜 얼굴로 돌아왔다

며칠후 나의 단짝이었던 친구가 소식도 없이

서울로 가 버렸다

친구는 앞집 아주머니의 딸 이었다

어느날 고기를 못 드시는 아버지가

동네 아저씨들이 잡은 개고기를 드시고 

이상한 병에 걸렸다

밥이 구더기로 보이고 나랑 엄마의 얼굴조차

몰라봤다

아버지가 불쌍해 매일 울었다

그러던 어느날

뒷집 무당 아저씨가 우리집 마당에 

아버지를 앉혀놓고 이상한 주문을 외우며

시퍼런 칼날 위에서 칼춤을 췄다

동네사람은 무서워하면서도 재미있다는 얼굴이었다

참 신기해라

왜 일까⁉︎

아버지의 병이 거짓말 처럼 나았다

나는 그 후로 골목길에서

뒷집 무당 아저씨를 우연히 만날때면

고맙기도하고 무섭기도해서 얼굴을 수그린채

인사를 했다

몇년이 흘러 나는 홀로 태장동을 떠났다

엄마 아버지가 않계시는 그곳에 더이상 있을수가 없었다


첫눈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

첫눈이 내렸어요

참 다행이지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하얀색이어서

첫눈은 잠시 바람에 흩날리다

구름을 삼키고 얼굴을 내민

햇님의 품속으로 살포시 녹아

사라졌지요

매년 그렇지만 첫눈은 언제나

마음 설레는 반가운 손님 같아요

창가에

한걸음 더 가까이 겨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내 마음에도

잘 설명할수는 없지만

평온한 그 무언가가

살며시 다가오고있는듯 합니다





처음부터

처음부터 다시 시작 할수있다는것을

오늘 알았습니다 

처음부터 걸어온 이 길이

내 길이었음을 문득 알았습니다 

그 어느길도아닌 이 길을

앞으로도 걸어나가겠습니다

나는 종교인도 지식인도 

잘나고 힘있고

돈많은 사람도 아니지만 

내 갈길만큼은 알고 있지요

기쁜 오늘…

그래요 늦지않았어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 하는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