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나는 바람이 좋아

보이지도 않고 만질수도 없는  

투명한 그 바람이 나는 좋아

나의 여윈 구멍 뚫린 마음 속에

잠시 머물다 저 먼 곳으로 작별인사도 없이 

사라져가는 

그 차가운 ,

그러나 심장을 살아 움직이게 흔드는 

언제나 그모습의 바람이 나는 좋아

열여덟 살이었던가!

죽은 자들이 잠든 검은 언덕 위에서

흐느끼고 있을때,

어느 한 바람이 내 곁에 머물며 

눈물에 얼룩진 내 흰 상복 저고리 옷고름을

따스하게 매만지며 한동안 조용히 있었지

분명 바람인데 불고 사라지는 바람이 아니었어

나는 바람이 좋아 

보고싶은 얼굴과 잊혀지지 않는 그리운 냄새

잊고싶은 얼굴과 이제는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먼 지난 시절의 허망함 그 모든 것들이 바람 속에서

태어나 죽어가지

나는 오늘 다시 태어났고

나는 지금 다시 시작하고

이 한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있어

보이지 않지만 살아 숨쉬며 

내 어깨를 감싸는 이 밤의 어느 한 바람

바람은 내게 살아가라고 이렇게 불어오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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